[Balanced CSR&ESG] Dr Yoo's ESG MBA _ 지속가능경영 이해와 실행(4)

관리자
조회수 1006


 지속가능경영/ESG의 역사(2)

 

○ 1960년대 : 시민운동의 성장과 유럽의 68혁명

1960년대에 이르러 CSR은 학자들에 의해 보다 명확한 개념으로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키스 데이비스(Keith Davis) 교수는 1960년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무시할 수 있는가?』 라는 논문에서 CSR을 "기업의 경제적 또는 기술적 이익을 넘어서는 기업가의 결정과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데이비스는 사회적 책임을 경영적 맥락에서 고려하는 것이 복잡하고 장기적인 관점이고 번거러운 일이긴 하지만, 결국 그것이 기업에게 유익을 줄 것이라는 경영적 관점의 CSR개념을 제시했고 이것은 이후 지속가능경영이나 전략적 CSR, 그리고 CSV의 이론적 뿌리가 되었다.

 

또,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클라랜드 C. 월튼(Clarence C. Walton) 교수는 1967년에 출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기업과 사회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업가가 인식해야 하며 이것은 외부의 강압이나 특정한 이해관계 때문에 실천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월튼은 CSR에서 기업과 사회의 관계의 중요성과 자발적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이후 이해관계자경영 및 경영철학과 기업문화가 바탕이 된 자발적 CSR 실천의 중요성을 제시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1960년대는 CSR이 학문적으로 성장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기업이 CSR을 잘하도록 만드는 시민의식과 시민운동이 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1955-1975)에 미국 참전(1964-1975)은 당시 미국내 흑인 인권운동과 맞물려 반전 평화, 환경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반전운동에 참여했던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은 베트남전이 군수기업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미·중·소간 이데올로기 냉전을 악화시켜 세계 평화에 악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이런 시민운동의 주장은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시민운동 단체들은 전쟁으로 돈을 번 대기업들을 찾아가 집회를 열고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요구했으며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베트남 전쟁으로 부를 획득한 무기 제조, 화학, 정유기업들이 반전운동의 대상이 되면서 시민들의 사회적 요구에 법인 차원의 사회공헌을 시작하게 되었다. 베트남 참전군인에 대한 직업 교육과 일자리 제공, 상이(傷痍)군인의 치료와 재활 지원, 전몰(戰歿)유가족 지원과 유자녀에 대한 장학사업이 미국에서 기업 법인 차원의 사회공헌으로 시작되었고 동시에 이런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기업 법인이 자산을 출연한 공익법인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한편, 미국의 시민운동은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시민운동은 1968년 ‘68혁명’으로 정점을 이루었다. 68혁명은 우리나라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많은 부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68혁명은 유럽국가들의 정치민주화, 인권존중, 노동권존중, 환경운동의 시작점이 되었으며 68혁명에 참여했던 학생과 청년들이 후에 정치가, 지식인, 언론인, 기업가로 성장하여 1993년 유럽연합(EU)을 결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EU는 전세계의 CSR과 지속가능경영을 이끌고 있는 국가 연합체이며 EU가 환경, 사회적으로 기업에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68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는 환경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반전, 인권, 평화 운동에 머무르고 있던 시민운동을 환경운동으로 확산시킨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Louise Carson)이 1962년에 출간한 『침묵의 봄』이다.

 

레이첼 카슨은 1차 세계대전 중 화학무기로 개발한 화학약품을 전쟁 종료 후 미국 농촌에서 살충제로 대량 사용하면서 땅과 강물 뿐만 아니라 동식물까지도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봄이와도 아무런 생물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침묵의 봄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침묵의 봄은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당시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고 시민운동의 영역을 환경운동까지 확장시킨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9년 1월에는 미국 서부해안의 원유 시추선에서 막대한 양의 원유가 유출되면서 미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휴양지인 산타바바라 해안이 온통 검은 기름으로 뒤덮히는 대형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TV로 생생하게 보도되면서 환경오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이듬해인 1970년 4월 22일에는 상원의원 게이로 닐슨(Gaylord Anton Nelson)과 대학생 데니스 헤이즈(Denis Hayes)가 주축이된 환경시민운동단체가 ‘지구의 날’을 선언하고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기업들의 행동을 막아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가두시위에는 미국 전역의 주요도시에서 수백만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응답하여 1970년 12월 미국 환경보호청을 설립하고 연방환경정책법을 제정했다. 미국 연방환경정책법은 이후 기업의 환경경영을 촉진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 1970년대 : CSR 체계 확립, 성장의 한계 인식

이 블로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경영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입장도 당연히 있으며 안타깝게도 사회책임경영과 지속가능경영을 옹호하는 입장보다 더 큰 영향력과 세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불고있는 ESG 열풍도 크게 보면 사회책임경영과 지속가능경영을 옹호하는 입장과 그렇지 않은 입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회책임경영과 지속가능경영을 옹호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기업의 근본적인 경영관행과 비즈니스 모델을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혁신,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ESG 경영을 투자와 평가대응만으로 충분하며 그 마저도 규제이기 때문에 기업(정확히는 오너) 이윤추구에 걸림돌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1970년 9월13일자 <뉴욕 타임즈>에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공화당 지지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기고문이 실렸다. 이 기고문의 제목은 "비즈니스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 기고문에서 프리드먼은 사회책임이라는 명분하에 이뤄지는 기업의 기부를 위선적인 겉치레 또는 경영자 개인의 명예욕을 채우기 위한 행위라고 표현하고 기업의 책임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익을 확보하고 주주에게 배당을 지불하며 노동자에게는 급여를 지급하고 국가나 사회에는 세금을 납부하는 역할을 다하면 된다고 하였다.

 

이 기고문은 미국 공화당을 중심으로 미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정책가들에게 강력한 이론적 바탕을 제공하였으며 이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범위를 최소화해야한다는 수많은 논문과 책에 인용되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의 기고문이 발표된 다음 해인 1971년에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가 단체인 CED가 당시 미국내 주요 기업가들의 의견을 모아 『비즈니스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들』 이란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 소책자에서 CED는 "그 어느 때 보다 사회에 더 큰 책임을 지고 더 넓은 범위의 인간적 가치를 제공하도록 비즈니스는 요구받고 있다. 사실상 기업들은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를 많이 제공하는 것 보다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 비즈니스의 미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에 대한 기업의 봉사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얼마나 경영진들이 잘 반영하는가에 달려있다' 고 설명하며 기업가와 경영진은 CSR을 당위적인 경영철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1972년에는 MIT의 컴퓨터 젊은 공학자 네 명이 <로마클럽>의 후원을 받아 2년 동안 진행한 연구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를 출간했다. <로마클럽>은 이탈리아의 기업가인 아우렐리오 페체(Aurelio Peccei)가 자원고갈과 환경오염문제의 심각함을 자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8년 설립한 민간단체이다. 미국과 유럽의 과학자, 경제학자, 기업가들이 로마클럽의 주요 구성원이다. 로마클럽은 1970년 6월 본격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 명칭은 '인류의 위기에 관한 프로젝트(A project on the crisis of humanity)' 이며 미국 MIT의 도넬라 H. 메도우(Donella H. Meadows)를 중심으로 네 명의 컴퓨터 공학자가 결성한 '시스템 다이나믹스 그룹(Systems Dynamics Group)'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을 기준점으로 인구 증가, 자원사용, 경제발전, 환경 악화 등의 경향이 계속되면 2030년 경 인류의 성장은 한계에 다다를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성장억제 정책, 인구 안정화 정책, 환경오염방지정책 등을 조속히 실천해야 한다고 하였다.

 

『성장의 한계』는 출간 후 맹렬한 찬반논란을 일으켰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당시 베트남전쟁과 동서냉전이 한창이었고 서구의 경제발전이 최고의 속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보고서는 주류 경제학이나 정책적 결단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재조명되었고 지금까지도 지속가능경영의 개념을 체계화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장의 한계 보고서가 출판되던 1972년 6월 스웨덴의 스톡홀롬에서 열린 <UN인간환경회의>에서 스톡홀롬선언이라고도 불리우는 <인간환경선언>이 채택되었다. 인간환경선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일곱번째 조항은 다음과 같다.


1. 인간환경은 인간에게 물질적인 생계수단을 제공하고, 지성적, 윤리적, 사회적, 그리고 정신적인 성장을 하게해주는 환경의 창조물이자 형성 물이다. (후략)

2. 인간환경의 보호와 개선은 인류의 행복과 범세계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중요한 문제이다. 즉, 인간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하는 일은 세계인의 절박한 소망이며 모든 정부의 의무이다.

7. 이 환경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시민, 집단,기업과 단체들 모두는 공통의 노력 안에서 공평하게 책임감을 나누어 가질 것을 요구 받는다. 여러 분야의 기관들뿐 아니라 모든 계층의 개개인은 스스로의 가치와 공동 행동으로 미래세계환경을 형성해 나갈 것이다.

 

이 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46년 인류의 안녕과 평화, 인권 증진을 위해 설립된 UN이 환경영역까지 그 의무를 확장한 선언이며 이 선언을 근거로 1973년 1월 UNEP(유엔환경계획)이 설립되었다. UNEP는 현재 환경영역에서 가장 강력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기구이다.

1976년에는 CSR과 지속가능경영에 한 획을 긋는 글로벌 규범이 최초로 발표되었다. 바로 OECD의 다국적기업의 가이드라인이다. 이 가이드라인에 CSR이나 지속가능경영과 같은 단어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다국적기업이 본국 외의 다른 나라(특히 제3세계에서)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어떤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할지에 대한 부분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CSR 영역에서는 최초의 국제적인 CSR 가이드라인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다국적 기업 가이드 라인은 최초 제정이후 지속적으로 재개정하여 현재 15개의 일반원칙과 2개의 권장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개념편에서 설명했듯이 1979년에는 캐롤 교수의 CSR 피라미드, 르네 파세 교수의 지속가능한 동심원 경제 모델이 발표되는 등 1970년대 말에는 CSR과 지속가능경영의 개념이 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Balanced CSR & ESG 유승권 



이노소셜랩 지속가능경영센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1길 30-34 이노소셜랩 오감

esg@innosociallab.com | 02-720-0259

이노소셜랩 홈페이지로 이동하기   이노소셜랩 오감 찾아오는 방법


COPYRIGHT ©INSB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