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anced CSR&ESG] ESG시대, 기업사회공헌의 역사적 흐름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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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alanced CSR & ESG, 유승권


제가 일하고 있는 이노소셜랩에서 「2021 사회공헌백서」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2022년 새해 첫 블로그 글은 백서에 기고한 글로 "가볍게" 시작하겠습니다. 사회공헌백서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사회공헌센터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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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시대, 기업사회공헌의 역사적 흐름과 과제

1. 시작 (산업혁명~20세기 초반) : 산업혁명과 기업가의 자선

 

근대 기업의 시작점을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본다면 기업사회공헌은 성공한 기업가 개인의 자선(慈善)에서 출발했다. 18세기와 19세기 성공한 기업가들은 자신들이 “스쿠르지”로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주름잡은 미국의 대기업가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 존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 헨리 포드(Heny Ford. 1863~1947)는 비즈니스에서는 악명을 떨치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묘비엔 위대한 자선 사업가로 기록되길 원했다. 앤드루 카네기가 65세에 지은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에는 당시 성공한 기업가들의 이런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카네기, 록펠러, 포드가 막대한 재산을 출연하여 설립한 개인과 가족재단은 이후 서구의 성공한 기업가들의 자선사업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 교육, 복지, 과학, 의료, 문화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근대적인 기업의 형태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나타났으며 서구와 마찬가지로 부를 획득한 기업인들이 개인 차원에서 민족인재양성 위한 교육사업을 시작으로 기업가의 자선이 시작되었다.

 

 

2. 분리 (1920년대~1960년대) : 기업가의 자선과 기업의 사회공헌

 

1차 세계대전이 주요 원인이 된 경제 대공황(1929~1939)으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사회불안정이 지속되자 미국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컬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아돌프 벌(Adolph Berle)과 하버드대 법학 교수인 메릭 도드(Merrick Dodd)의 논쟁으로 CSR 역사가들은 이를 <벌-도드 논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벌은 기업은 주주의 개인 사유물이므로 사회적 책임이나 목적을 고려한 경영을 하는 것은 주주의 동의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주주 중심적 경영을 강조하였지만, 도드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도드는 기업의 목적은 주주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을 넘어서 노동자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소비자들에게 좋은 품질의 상품을 판매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것까지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드의 주장은 이후 이해관계자 경영이론으로 발전하기도 하였으나 당시 대다수 주주와 기업가들은 벌의 주주 중심 경영에 손을 들어주었으며 기업 차원의 사회적 책임보다는 성공한 기업가의 개인적인 의지를 반영한 자선사업을 선호했다. 주주와 기업가의 이런 선택과 선호는 기업가의 개인적인 자선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분리하는데 영향을 미쳤으며 1960년대까지 기업가의 개인적 자선활동이 기업사회공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는 동안 기업경영 자체가 매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업가 개인 차원의 독립운동지원과 장학사업이 일부 실행되는 수준에 머물렀다.

 

 

3. 시민의 요구 (1960-70년대) : 기업 법인의 사회공헌 시작

 

기업사회공헌 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경영은 시민과 사회의 요구 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을 때 실행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베트남 전쟁(1955~1975)은 미국과 유럽의 시민의식을 일깨우고 시민운동단체가 성장하는 계기로 작용했으며 시민과 사회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본격적으로 요구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로 작용했다. 베트남 전쟁 반전운동은 인종차별 반대와 인권운동, 환경운동, 노동해방운동으로 미국과 유럽의 주요 도시로 확산되었으며 시민운동의 대상이 정부에서 기업으로 확대되는 결과를 나았다. 베트남 전쟁으로 부를 획득한 무기제조, 화학, 정유기업들이 반전운동의 대상이 되면서 해당 기업들은 시민들의 사회적 요구에 법인 차원의 사회공헌을 시작하게 되었다. 베트남 참전군인에 대한 직업 교육과 일자리 제공, 상이(傷痍)군인의 치료와 재활 지원, 전몰(戰歿)유가족 지원과 유자녀에 대한 장학사업이 미국에서 기업 법인 차원의 사회공헌으로 시작되었고 동시에 이런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기업 법인이 자산을 출연한 공익법인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경제성장기가 시작되면서 재벌들이 등장하고 재벌 개인 재산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공익법인이 설립되기 시작했지만 기업 법인 차원의 사회공헌은 불우이웃돕기나 재해구호 성금 기부 등 소극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4. 상업화 (1980년대) : 마케팅과 사회공헌의 결합

 

기업이 법인의 자산을 출연하여 공익재단을 설립하는 방식의 기업사회공헌이 19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도 이 영향을 받아 당시 주요 대기업들이 문화예술, 장학, 학교, 의료 등 공익재단을 설립하였다. 한편, 1984년을 기점으로 기업사회공헌의 또 다른 선택지인 상업화의 길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메리칸익스프레스카드(이하 아멕스)의 <자유의 여신상 100주년 기념 보수공사 기부 이벤트>였다. 이 이벤트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멕스는 이 이벤트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급격히 높일 수 있었고 당시 빠르게 성장하던 신용카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이 이벤트 이후 공익연계마케팅(CRM : Cause Relative Marketing)이 기업사회공헌의 주요 실행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1984년 유한킴벌리가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시작했다.

 

5. 전략화 (1990년대~2000년대) : 비즈니스에 유익을 주는 사회공헌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는 서로 독립된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 되고 다른 영역의 일에는 직접적으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언의 합의였다. 따라서, 기업재단은 가능하면 모기업의 사업과 관련이 없는 분야에 기부했다. 빈곤, 질병, 교육, 아동, 장애인, 문화/예술 등은 기업재단들이 정부 또는 시민사회와 시시비비 없이 후원할 수 있는 공통의 기부영역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 사고가 1989년에 발생했다. 미국의 거대 정유기업 엑손모빌의 유조선 <엑손 호라이즌 호>가 알래스카만에 좌초하면서 엄청난 양의 원유를 유출했고 막대한 환경 파괴와 경제적 피해를 불러일으켰다. 엑손모빌은 1955년 기업재단인 엑손모빌재단 설립 후 사회복지와 문화, 교육사업에 매년 수백만 달러 이상을 기부한 모범적인 기부 기업이었다. 그런데, 알래스카만 원유 유출 사고가 터지자 전세계 환경단체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엑손모빌은 사고를 수습하고 문제해결에 조언과 협력을 구할 수 있는 환경전문가 또는 환경단체를 구하는 일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한편, 엑손과 같은 정유회사인 미국 아르코(Arco)의 경우 1971년 재단을 설립한 후 환경단체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환경영역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준히 지원하고 있었다. 아르코도 원유 유출 및 주유소 폭발과 같은 사고가 발생하였지만, 환경단체들은 비판과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동의 방안을 제시하면서 빠르게 사태 수습을 할 수 있었다.

 

엑손모빌과 아르코의 사례를 관찰한 기업들은 ‘전략적 자선사업(Strategic philanthropy)’의 필요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기업 전략가들은 기업 또는 기업재단의 사회공헌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진정성이나 순수성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기부자(기업)에게 돌아오는 효용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경쟁전략의 대가인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와 클레이머 교수는 기업이 주주의 동의를 얻어 사회공헌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사회공헌이 기업운영과 비즈니스 양쪽 모두에 유익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라고 제안하며 ‘전략적 자선사업’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시민사회와 전통적 자선단체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기업은 빠르게 전략적 사회공헌의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이르는 동안 대부분의 기업과 기업재단들은 전략적 사회공헌과 순수한 후원사업을 혼합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고 기업사회공헌은 사회적 가치와 기업적 가치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쫓기 시작했다.

 

6. 분리와 결합, 그리고 혼란 (2000년대~2010년대) : CSR, CSV

 

1990년대 마케팅, PR, 리스크 관리와 결합 된 전략적 기업사회공헌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업사회공헌을 수행하는 조직의 역할 분리 현상이 일어났다. 기존에 해왔던 공익 기부 중심의 사회공헌은 기업 공익재단이 담당하고 전략적 사회공헌은 기업내 CSR팀이 담당하는 역할 분리가 진행되었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CSR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기업의 비즈니스 가치사슬과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회, 환경적 이슈를 관리하고 대응하는 조직이 기업 내에 필요하게 되었고 CSR팀이 신생 조직으로 빠르게 자리 잡게 되었다. 미국과 유럽 기업의 CSR팀은 비즈니스 차원에서 사회, 환경 이슈를 관리하는 팀이기 때문에 이들이 실행하는 사회공헌 프로젝트는 자연스럽게 비즈니스와 결합하는 전략적 사회공헌이 중심이 되었다. 2010년 HBR에 실린 마이클 포터의 CSV 공유가치 아티클이 미국과 유럽 기업에서 큰 주목을 끌지 못했던 이유는 이미 2000년대 CSR팀이 실행하던 대부분의 전략적 사회공헌 프로젝트들이 CSV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미국과 유럽에서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확산되던 1990년대에 ‘책임’이라는 용어에 대해 부담을 느낀 주요 대기업과 언론들이 CSR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번역·해석하지 않고 ‘기업사회공헌’이라고 번역·해석하는 바람에 이후 기업사회공헌, CSR, CSV가 상호 충돌과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우리나라에서 CSR이 기업사회공헌과 같은 말로 사용되고 미국과 유럽에서처럼 기업과 기업재단의 역할 분리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2000년대에 전략적 사회공헌이 득세하면서 기업사회공헌의 사회적 역할보다는 기업적 효능이 강조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게다가 CSV가 CSR의 다음 단계라는 논리와 근거 없는 언론보도와 일부 기업의 무분별한 용어 사용이 이루어지면서 기업사회공헌, CSR, CSV는 개념과 해석, 실행과 평가, 사회적 역할과 기업적 효능 등 모든 측면에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7. ESG (2020년~) : 지속가능경영 시대의 기업사회공헌의 위치와 역할


2000년대 중반부터 유럽과 미국의 금융산업과 투자계에서 화두가 되었던 ESG가 2020년 말부터 뒤늦게 한국에서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언론과 기업들은 ESG를 과잉 사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평가하여 투자에 반영하는 투자 평가 프레임으로 ESG를 활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언론과 기업들은 ESG를 CSR과 지속가능경영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CSR, 지속가능경영 전문가와 실무자들은 한국의 이런 상황에 대해 의아해하고 있다. 이런 의아한 상황의 원인은 간단하다, 우리나라 언론과 기업들이 CSR, 지속가능경영, ESG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대다수의 기업사회공헌 실무자들이 ‘지시’에 따라 ESG에 적합한 사회공헌 아이템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2011년 CSV가 등장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사회공헌은 역사적 흐름에 따라 어떤 전략과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 즉 기업사회공헌의 기본과 시작으로 돌아가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료하다. 기업사회공헌은 기업이 사회의 운명과 함께하는 사회구성원 중의 하나임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즉, 사회가 발전하면 기업도 발전하고 사회가 쇠퇴하면 기업도 쇠퇴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기업은 기업 자체의 안녕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사회의 안녕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기업 사회공헌의 백 투 더 베이직이다.

 

환경오염, 자원고갈, 인구증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재앙, 그리고 그 때문에 발생한 사회갈등과 불안, 불평등이 인류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ESG, 지속가능경영시대의 기업사회공헌의 전략과제는 바로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ESG에 맞는 단기 아이템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사회공헌 중장기 전략과 계획을 수립하고 실효성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하는 것이 지금 기업사회공헌 실무자들이 해야 할 일이며 기업사회공헌의 전략과제라 할 수 있다.

 

이노소셜랩 ESG센터 유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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