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ESG, G 지배구조에서 "의사결정구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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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ESG, G 지배구조에서 '의사결정구조'로...

 

개념 정의는 중요하다.

 

개념을 정의하는 일은 첫 단추를 끼우는 일과 같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다음에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것처럼 개념 정의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 다음 일을 바로잡는 것이 정말 어렵다. 2020년 이후 우리나라에 ESG 열풍이 불면서, ESG가 관련된 모든 용어들의 개념과 정의를 ESG가 과도하게 휩쓸고 과잉 대표되고 있는 현상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많다. ESG가 국민 유행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ESG 개념과 정의, 그리고 활용처가 제대로 알려지거나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ESG의 G를 '지배구조'라고 해석하고 사용하는 것은 좁은 해석이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거버넌스의 어원은 그리스어 kubernáo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이 단어를 '배를 조종하다' 라는 뜻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즉, 배가 어떤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선장과 선원들이 힘을 합해 배를 움직이는 것을 kubernáo 라고 하고 이것이 영어 거버넌스의 어원이 되었다. 학문적 정의를 봐도 거버넌스는 지배구조와 같은 뜻이 아니다. 거버넌스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인 Kooiman & Vliet(1993)는 거버넌스를 "공식적인 권위 없이도 다양한 행위자들이 자율적으로 호혜적인 상호의존성에 기반을 두어 협력하도록 하는 제도 및 조정형태" 라고 정의했으며, Keohane & Nye(2000)은 "거버넌스는 조직의 집단적 활동을 이끌고 제약하는 공식 혹은 비공식 과정과 제도들"이라고 정의했다.

 

지속가능경영과 사회책임경영의 실행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ISO26000에서 거너번스는 "조직이 목표를 추구하는데 있어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사항을 수행하기 위한 체계" 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제기구의 정의도 마찬가지다. UNDP(1997)는 "거버넌스란 모든 수준에서 세계와 국가, 조직의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경제적, 정치적, 행정적 권한의 행사이며 시민과 집단이 그들의 이익을 분명히 하고, 법적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고, 차이점을 중재하는 메커니즘, 프로세스 및 제도"라고 했다.

 

거버넌스의 어원을 가지고 있는 유럽에서 거버넌스는 20세기 중반까지 주로 정치학, 행정학에서 사용되었다. 거버넌스라는 말이 기업경영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와 장소는 1960년대 미국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시민운동이 탄생하고 급속히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과 흑인차별을 해소하자는 공민권(公民權)운동이 있었다. 당시, 반전과 인권운동이 환경운동으로 확대되면서 전쟁과 환경오염을 통해 돈벌이를 하는 기업들이 시민운동의 주요 타겟이 되었다. 

 

시민들은 기업들이 이익만을 위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지구환경도 고려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기업주 개인에게 의사결정권한이 모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가진 이사들로 이사회를 구성해야 하며 기업 외부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의사결정구조, 즉 거버넌스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현재까지 시민단체들의 바람과는 달리 기업은 여전히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쫓고 있으며, 전쟁과 환경오염까지도 이익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거버넌스를 우리말로 뭐라고 해야하나?

 

그렇다면, 거버넌스를 우리말로 뭐라고 불러야 할까? 거버넌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거버넌스에 적합한 한국어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거버넌스 학회>는 거버넌스를 그냥 거버넌스로 부르기로 했다. 기업 지배구조(支配構造)를 영어로 직역하면 'Corporate rule structure' 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도와 법칙이라는 영어단어 Rule에는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자신의 뜻대로 복종하게 하여 다스리거나 차지하다’ 라는 뜻도 있다. 하지만, 영어에서 rule structure를 Governance와 같은 말로 쓰지 않는다. 거버넌스는 '복종, 다스림, 차지'와 같은 누가 누구를 소유하거나 누가 누구에게 강제, 명령하는 의미가 아닌 이해관계자 사이의 협의(協議, discuss)나 합의(合議, agreement)를 의미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지배구조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네요" 라고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직도, 여전히, 그리고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는 상사가 부하에게 강제하고 명령하는 방식이니까 말이다. 우리나라 기업 거버넌스의 현실이 '지배방식' 이기 때문에 거버넌스를 지배구조라고 부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인 동시에 거버넌스를 지배구조라고 정의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배구조'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통제성, 강제성, 일방성은 기업 거버넌스의 지향점이 결코 아니다. ESG와 관련된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살펴본다면 '지배구조' 라는 말 보다는 '거버넌스'라고 그냥 쓰던지, 아니면 '의사결정 구조 또는 방식'이라고 풀어 쓰는 것이 훨씬 좋은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SG, 지속가능경영에서 거버넌스는 어디를 향해야 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ESG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은 ESG가 지속가능경영을 잘하는 기업들에 대한 금융과 투자의 평가프레임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따라서, 투자산업에서 ESG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 것은 그럴 수 있지만 일반적인 기업경영에서는 ESG 보다는 ‘지속가능경영(sustainable management)’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실제, 미국과 유럽에서도 ESG는 금융과 투자산업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소위 ‘업계전문용어’이다. 

 

EU는 지속가능경영을 ‘기업의 지속가능성뿐만 아니라 지구환경(E)과 사회공동체(S)의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는 의사결정(G)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지속가능경영안에 ESG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구환경(E)과 사회공동체(S)의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는 의사결정(G)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연결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영어로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라고 하는데 CSR은 기업의 가치사슬상 이해관계자와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제, 법적, 윤리, 사회, 환경, 공익적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CSR을 기업사회공헌이라고 해석하고 사용해왔는데, 이것은 ESG에서 G를 지배구조라고 좁게 해석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CSR은 기업의 공익적 책임인 사회공헌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과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CSR과 지속가능경영, ESG를 연결해서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종합적인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 보니 ESG가 CSR지〮속가능경영과 다르다고 하거나 CSR의 시대가 가고 ESG의 시대가 왔다는 이상한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아무튼, 지속가능경영에서 거버넌스의 역할은 가치사슬전반의 이해관계자들이 처한 상황과 이들의 필요와 욕구를 수렴하여 기업의 지속가능성 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과 사회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결정의 권한을 오너나 최고경영자 한사람에게만 집중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경영을 실현할 수 있는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사회는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상황을 반영하여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는 것이 지속가능경영의 거버넌스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속가능경영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사회뿐만 아니라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또한 지속가능경영의 개념을 제대로 알고 기업의 이사들에게 지속가능경영을 실행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함과 동시에 각자의 위치에서 지속가능경영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지속가능경영 거버넌스를 설명하면 기업경영의 현실을 모르는 이상적인 얘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ESG, 그리고 지속가능경영과 관련된 글로벌 가이드라인과 제도들이 이런 이상향을 향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우리 기업의 현실에서 이상적인 지속가능경영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할지, 그리고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 어떤 과제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알아야 한다.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이 기획발〮행하고 이노소셜랩 지속가능경영센터가 연구집〮필한 『ESG핸드북 거버넌스』편은 투자평가 관점의 지배구조를 넘어 지속가능경영 관점의 거버넌스 체계를 완성하기 위한 방향과 과제를 담았다. 핸드북 형식의 한계로 깊은 해석과 충분한 자료 및 사례를 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기업 현장에서 지속가능경영을 향해 달려가는 실무자들에게 거버넌스 실행의 지도와 나침반 역할을 했으면 하는 것이 연구와 집필을 맡은 사람의 바람이다. 

 

※ 이 블로그 글은 <SK사회적가치연구원>의 요청에 따른 기고문입니다. SV Hub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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