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 대한민국에서 지속가능경영(ESG)이 잘 되지 않는 이유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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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서 지속가능경영(ESG)이 잘 되지 않는 이유

 

뼈아픈 질문...

 

얼마 전, 초대를 받아 중소기업 대표/경영진 서른 분 정도를 대상으로 지속가능경영(ESG)에 대해 두 시간짜리 강연을 했다. 첫 50분 강의를 마친 후 쉬는 시간에 두 분이 찾아와 명함을 내밀었다. 나도 명함을 드렸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한 대표님이 이렇게 질문했다.

 

"강사님, 오늘 강의는 참 좋은데, 들으면 들을 수록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우리 회사가 20년째 납품하는 국내 대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정말 ESG를 잘하는 기업처럼 보여지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강사님은 이런 문제가 왜 일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다른 대표님도 연이어 질문했다.

 

"기업도 기업이지만 우리나라가 ESG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강사님의 말씀처럼 이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모두가 잘 알고 잘해야 할텐데, 우리나라는 왜 ESG에 대해 이렇게 무심한 것일까요?"

 

쉬는 시간에 잠깐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강의 시간에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강의가 시작됐다. 나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쉬는 시간에 두 분의 대표님이 우리나라에서 지속가능경영(ESG)이 잘 안되는 이유가 궁금하시다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강의 내용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한데 이 질문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답변을 하다보면 강의 내용을 다 말씀드릴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떠세요? "

 

"괜찮습니다. 답변이 더 궁금합니다." 

 

또 다른 어떤 분이 큰 소리로 말했다. 다른 분들도 흔쾌히 동의한다는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옆에 있는 화이트 보드에 답변의 키워드를 큼지막하게 써내려갔다.

 

1. 지속가능성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음

 

지속가능경영, ESG를 시작하게 만든 기후위기,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자원고갈, 식량위기, 인권 불평등, 사회 갈등, 산업 안전 등의 문제를 우리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실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기업의 오너나 경영진들은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만 하더라도 일년 365일 24도에 맞춰진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고, 조금 느껴봐야 주말에 골프 라운딩 할때 "덥다"고 느낄 정도죠. 

 

또, 미국, 유럽,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자연재해도 이상하게 우리나라는 운 좋게 잘 피해가면서 기후재난에 대한 위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이 겪고 있는 인종, 민족, 이민자, 난민, 장기 실업자 등 심각한 사회 구성원 간 갈등 문제도 우리나라에서 대규모로 일어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죠. 이런면에서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이다라고 볼 수 있지만..., 저는 아주 잠깐 동안 우리가 운이 좋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2.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신경을 쓰지 않음

 

지속가능경영(ESG)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이슈들은 당장 눈 앞의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만 이렇다고 볼 수 는 없지만,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면,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면 아무리 국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관심을 잘 갖지 않는 것이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습성인 것 같습니다. "내 손톱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다" 라는 속담도 일상적으로 자주 쓰고 있으니까요.

 

지속가능경영(ESG)이 유럽과 미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시작되어 200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기업에 내재화되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2020년이 되어서야 국민연금이 ESG에 투자한다, EU ESG 규제가 강화된다고 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에 아주 뒤늦게 시작을 했습니다. 그것도 당장 영향을 받는 기업들만 떠밀려서 억지로 시작했고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하는 척 시늉만 하거나 팔짱을 끼고 있는 상황이죠.   

 

3. 단기적, 재무적 관점에 매몰

 

이렇게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관심을 두지 않는 습성은 단기적, 재무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수 많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사고를 겪은 사람과 가족들을 구제, 위로하고 그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문제를 개선하고 예방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고 여론을 모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고가 일어난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주요 언론에서는 '사고 피해자 보상금 몇 억 예상' 이라는 보도를 내보내고 그 밑에는 '가족들은 좋겠다', '보상금 때문에 집안 싸움 나겠네' 라는 댓글이 달립니다. 유튜브 매체에서는 이렇게 모든 것을 '돈'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ESG를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언론 매체들이나 저 처럼 ESG를 주제로 강연해서 밥 벌어 먹고 사는 소위 전문가들도 지속가능성의 근본적인 위기나 장기적인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제를 중심에 두지 않고, ESG를 지나친 규제로 보고 그 규제를 피해가는 방법이나 또는 ESG를 돈 버는 기회로 삼자는 말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주제나 이슈는 사회적 관심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4.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이기심과 태도

 

제가 십수년 동안 블로그, 강의, 책, 유튜브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중요성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CSR이 기업사회공헌으로 아주 협소하게 이해되는 바람에 'CSR의 시대가 끝나고 CSV의 시대가 왔다거나, ESG 시대엔 CSR은 진부한 얘기다' 라고 말하는 언론, 전문가(?)들이 많은데 이것은 지속가능경영(ESG)을 제대로 공부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얘기입니다.

 

우리사회에서는 책임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 책임져" 라고 하면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CSR 용어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1990년대에 이 말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지 않고 '기업사회공헌'이라고 해석하고 퍼뜨린 이유는 당시에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기업들과 그 기업들과 관계가 깊은 언론들이 "책임"이라는 단어 자체를 아주 싫어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나아졌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CSR에서 "책임", Responsibility(리스판스빌리티)는 기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Accountbility(어카운트빌리티) 보다 넓고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Accountbility는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의미합니다. 주로 법적 책임이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반면에 Responsibility는 이해관계자들의 '기대에 부응'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은 상품과 서비스도 잘 만들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고, 인권도 존중하고, 아동노동이나 강제노동도 없고, 직원들에게도 잘하고, 작업장 안전도 잘 지키고, 환경도 망가뜨리지 않고, 협력사에 갑질도 하지 않고, 탈세도 하지 않고, 지역사회 발전에도 힘쓰겠지... 라고 우리사회 대부분이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에 부응하는 것이 바로 CSR에서 말하는 "책임"의 의미이며 지속가능경영(ESG)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Responsibility를 빼고 지속가능경영을 한다는 것은 쌀을 빼고 밥을 짓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에서 지속가능경영(ESG)을 법무팀이 주로 담당할 때 발생하는 문제가 법적 책임(Accountbility)만을 생각하고 기대에 대한 부응 책임( Responsibility)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진행을 하지 못하거나 또는 ESG를 과도한 규제로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단기적이고 재무적인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우리사회와 기업의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법적 책임을 넘어서서 기대에 대한 부응까지 책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있는데 저기 뒤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 

 

"강사님 말씀을 들으니까, ESG가 되게 비관적으로 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파구가 없을까요?"

 

이것도 어려운 질문이다. 뭔가 기발한 돌파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언론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이 중요한 겁니다. 미국이 EU에 비해 지속가능성에 관한 글로벌 리더십을 갖고 있지 못한 이유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사사건건 정쟁을 하면서 공화당이 집권하면 지속가능성 이슈가 완전히 무시되고 민주당이 집권하면 그걸 다시 살리느라고 시간과 자원을 모두 허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U는 지난 십수년간 지속가능성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십을 탄탄하게 만들면서 많은 반대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지속가능성 정책을 확대,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때 그때 발생하는 정치적 이슈와 정쟁에 매몰되어 기후문제, 에너지 문제, 인권문제, 인구문제, 생태계문제, 식량문제, 자원문제 등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오래동안 꾸준하게 '빌드업'해야만 하는 국가와 사회, 경제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만하면 속이 바짝 바짝타고 밤에 잠도 제대로 오지 않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아이쿠.... 이런 말을 하다보니, 강의시간이 다 되어버렸다. 결국 절반의 강의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강의를 끝내버렸다. 죄송하다는 인사를 해야만 했다. 

 

강의를 마치고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쉬는 시간에 질문을 주셨던 대표님들이 다시 찾아왔다.

 

"강사님, 오늘 강의에서 그동안 ESG를 접하면서 답답했던 부분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꾸벅 인사를 했다.

 

새삼,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강의보다 상황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식견과 통찰에 관한 강의가 훨씬 더 중요함을 느꼈다. 

 

대한민국에서 지속가능경영(ESG)를 제대로 하게 하려면, 인사이트가 넘치는 강의를 해야 할텐데..., 아직 많이 부족하다. 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수 밖에.... 

 

Balanced CSR & ESG 유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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