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의무공시, 이상과 현실의 간극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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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만에 나온 뒷걸음질

지난 2021년 1월 14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가 공동 발표했던 「기업공시제도 종합 개선방안」의 핵심은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2025년 회계기준년도부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을 의무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만 5년이 지난 지금, 2026년 2월 25일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 명의로 발표된 「지속가능성(ESG) 공시 제도화 방안」은 5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뒤걸음친 흔적이 역력하다.

 

가장 놀란 대목은 공시 대상 기준이다. 당초 예고된 2조 원보다 훨씬 완화된 '자산 30조 원 이상 상장사'를 공시 대상으로 제시한 점은, 자산 3조 원을 30조 원으로 잘못 기재한 '오타'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상식 밖의 기준이다.

 

발표 직후 ESG 업계와 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공시 대상의 파격적 완화, 공시 일정 지연, Scope 3 탄소배출량 보고 유예 등은 기대 이하를 넘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하는 처사이고, 윤석열 정부때 기업 부담을 이유로 어떻게든 ESG 공시를 막아보려던 집단들의 주장과 일치하며, 정부가 ESG 의무공시에 대해 제도적 리더십을 전혀 발휘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여러 비판 의견이 있지만, 녹색전환연구소의 논평이 내 의견과 일치한다. <바로가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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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정보공개 의무화는 꼭 필요한 일인가?

ESG를 단순히 '유럽발 환경규제' 정도로만 이해하는 이들은 의무공시가 국내 기업들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가급적 다른 나라들의 추이를 지켜보며 천천히 도입해도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먼저 매를 맞아서 얻을 소득이 무엇이냐는 논리다. 안타깝게도 현재 금융위원회의 인식 역시 딱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ESG의 근본적인 목적을 생각한다면 관점은 완전히 달라진다. ESG의 본래 목적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 자체의 지속가능성뿐만 아니라 환경(E)과 사회(S)의 지속가능성까지 향상시키는 의사결정(G)을 내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ESG 의무공시는 기업들이 이러한 경영을 실제로 잘 실천하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핵심 장치가 된다. 투자자, 고객과 소비자, 거래 및 협력기업,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는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기업에 투자를 할지,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할지, 기업 간 거래를 맺을지, 혹은 제도적으로 지원하거나 제재를 가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결국 ESG 의무공시 제도는 단순히 EU의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고, 그 자체로 여러 이해관계자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토대이며 향후 환경과 사회적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질 때를 대비한 리스크 예방과 차별화 전략을 제시하기 위한 밑거름을 만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본질적인 목소리가 금융위원회 당국자들에게는 그저 '공자님 말씀'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4월까지 의견을 추가로 수렴하여 최종 로드맵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그렇게 많은 세미나와 포럼, 공청회, 온라인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제시되었던 목소리들이 단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점을 보면, 결국 정부가 애초에 답을 정해놓고 의견 수렴이라는 형식적 절차만 갖추려는 모양새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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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반응

 금융위원회의 이번 로드맵 발표 직후, 현직 기업 ESG 담당자들의 반응을 직접 확인해 보았다.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부 분위기는 어떠하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들은 말 그대로 '혼란'이었고 '실망' 이었다. 금융위원회가 기업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과 ESG에 대한 발전적 비전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미 자산 30조 원을 훌쩍 넘는 대기업들은 이번 발표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이다. 사실상 현재와 달라질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해 왔으며, EU의 규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들이 의아해하는 대목은 'Scope 3 보고 유예'다. EU 등 글로벌 시장과 거래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Scope 3 정보를 공개해야만 한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유예시켜버리면, 기업 내부 조직을 설득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혼선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는 금융위원회 당국자들이 기업이 직면한 글로벌 실무 환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쓴소리가 돌아왔다.

 

가장 큰 혼란을 겪는 곳은 자산 2조 원 언저리의 기업들이다. 2021년 정부 발표에 따라 '2조 원'이 공개 대상이 될 것이라 믿고 지난 5년간 공들여 준비해 온 곳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의무화 기준이 30조 원, 그 다음이 10조 원으로 상향되면서 회사 내부에서 ESG를 추진해야 할 공식적인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ESG의 본질을 이해하는 극소수의 기업은 현재의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답했으나, 그마저도 실무자 수준에서 담보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따라서 만약 이대로 로드맵이 확정된다면 그동안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던 기업들은 이를 기회 삼아 ESG를 슬그머니 접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장의 목소리를 종합해 볼 때, 이번 발표를 가장 반길 곳은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ESG 경영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10조 원 이하의 기업들이다. 이제 이들에게 ESG 경영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안타까운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과 ESG를 내재화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이 좋은 기회를 정부가 스스로 걷어차 버린 셈이다.

 

 

컨설팅사의 반응

컨설팅사들은 한 방 크게 맞았다는 반응이다. 2021년 이후 '이제 ESG 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 라고 큰소리 치며 위기감을 조성하고 공포 마케팅을 해왔는데, 정작 제도는 '그게 아니다' 라고 '파투'를 놓은 모양이 되었다. 결국 앞으로 공포 마케팅 전략을 쓰기는 어려워졌다. 어떤 컨설팅사는 이제 영리기업 시장은 확대하기 어려워졌으니 공공기관으로 가야할 것 같다고 답했다. 작년 12월에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ESG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공기업, 공공기관 등의 지속가능경영을 확산하고 성과를 보고서 형태로 의무화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의 ESG경영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거꾸로 금융위원회는 ESG 제도화를 뒤로 미루겠다고 한다. 같은 정부인데 서로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모양새도 우습다. 어쨌거나, 2조원 자산 규모의 영리기업 시장을 바라보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과 ESG 평가 대응 확대를 기대하며 우후죽순 생겨났던 ESG 컨설팅사들의 전략 수정과 시장 재편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도 방향을 못찾고 있는 우리나라 ESG

이번 로드맵 발표는 단순한 일정 연기와 규제 완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ESG 생태계 전체가 아직도 제대로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씁쓸한 사건이다. 정부는 '기업 규제 완화'라는 달콤한 사탕을 던져주었다고 자평할지 모르나, 실상은 우리 기업들이 더 나은 더 멋진 기업으로 성장 발전 할 수 있는 정말 소중한 기회와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훌륭한 무기를 정부가 앞장서서 빼앗아 버린 꼴이 되었다. 남들이 앞다투어 미래를 설계할 때 혼자서 과거의 논리에 갇혀 뒷걸음질 치는 금융당국의 모습에서, 대한민국 기업들을 글로벌 Top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국정과제가 무색해 보인다.


출처=Balanced CSR & ESG 유승권 (이노소셜랩 지속가능경영센터장)

https://mryoopm.tistory.com/m/2596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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