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ESG를 해야하나요?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대학원 저녁 강의를 마치고 짐 정리를 하는데 한 학생이 다가왔다. 잠깐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최강야구'의 마지막 부분이라도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말해보라고 했다.
"교수님, 회사에서 내년 사업계획을 짜고 있는데 우리 ESG팀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문제가 뭐냐면 ESG팀을 비롯해 본사 운영 부서 예산과 인력을 대폭 줄이겠다는 겁니다. 올해와 내년 회사 매출과 이익이 좋지 않다는 예상이 나온 것 같습니다. 담당 상무는 불황에 무슨 ESG를 하냐고.. 팀도 줄이고 예산도 팍 깍을 거라고 엄포를 놨습니다. 교수님, 불황에도 ESG를 해야하나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ESG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큰소리 치는 회사가 보고서가 나온지 100일도 채 안된 시점에서 매출과 수익이 안좋으니 ESG를 하지말라고 한 것이다. 뭐.. 그 속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불황에도 ESG를 해야하나요? 라기 보다는 불황에 ESG를 더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라고 하면 더 좋겠죠?"
"네, 제가 질문을 좀 부정적으로 한 것 같습니다. 요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고 있어서요."
안타깝지만 최강야구 보는 것을 포기했다. 학생과 나는 경영관 로비에 마주 앉았다.
지속가능경영(ESG)은 활동 이전에 경영 철학과 원칙
상담을 요청한 학생이 일하는 기업을 비롯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ESG)을 '기업 경영에 필수적이지는 않은데 돈은 많이 들어가는 일' 쯤으로 이해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맞다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이것은 대부분 오해다. 지속가능경영은 돈이 들어가는 활동이기 이전에 경영 철학과 원칙이다. 나는 학생에게 이렇게 첫 마디를 꺼냈다.
"매출과 수익이 안난다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사업을 하라고 하는 회사는 아니잖아요? 만일 진짜 법을 어기면서 사업을 하라고 하면 그 회사는 빨리 그만두는 것이 좋죠. 지속가능경영도 마찬가지예요. 돈 드는 일도 있지만 돈과 상관 없이 경영철학과 원칙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요."
"당연히 그 점도 잘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 규제를 지키거나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돈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잖습니까?"
"맞아요. 돈, 자원없이 그냥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죠. 자원이 부족할때는 더더욱 지속가능경영을 전략적으로 해야합니다. 전략이라는 것이 원래 제한적 자원을 가지고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니까요. 불황일때 기업이 어떤 전략을 써야하는지 수 많은 연구와 책이 있는데요. 그 수 많은 연구와 책들의 공통점은 생각보다 간단해요."
내가 학생에게 설명한 불황기의 기업전략, 특히 지속가능경영전략은 다음의 다섯가지이다.
1. 위축되거나 포기하지 마라!!
영국에서 오랜 불황이 지속될 때 기업 CEO가 임직원들에게 부정적인 메세지를 계속 주는 경우와 긍정적인 메세지를 계속 준 경우의 회복력에 대한 비교 연구를 했다. 부정적인 메세지를 계속 준 기업에서는 핵심 인력이 이탈하고 영업 활동의 횟수가 줄어 들었다. 반면 긍정적인 메세지를 준 기업은 핵심 인력들의 충성도가 올라가고 영업 활동의 횟수가 늘었다. 당연히 기업 매출과 수익의 회복도 긍정적인 메세지가 자주 전달된 기업이 빨랐다.
이 연구를 진행한 옥스퍼드 사이드 경영대학원의 교수 리차드 위팅턴(Richard Whittington)은 불황기를 겪거나 기업의 매출과 수익이 나빠졌을때 엄중함과 엄격함도 좋지만 임직원들이 위축되거나 주눅들게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물론, 경영성과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을 지게하고 방만한 경영과 태만한 근무 태도를 바로잡고 필요 없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타이트한 경영 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경영(ESG)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매출이 좋지 않다고 해서 ESG는 아예 말도 못꺼내게 하는 것은 지혜로운 전략이 아니다. 겁줘서 분위기 험악하게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하수(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다.
2. 반성과 학습의 기회로 활용하라.
조직 역량 강화를 위한 불멸의 명저 『학습하는 조직 / Fifth Discipline』 을 쓴 피터 센게(Peter Senge) 교수는 불황일 때야 말로 조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그는 보통 기업이 잘되서 매출과 수익이 쭉쭉 올라가면 기업은 조직과 임직원의 역량을 강화할 생각보다는 성공의 열매를 즐기는 파티를 연다고 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잘 나갈때는 즐길 생각만하지 훈련하거나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피터 센게 교수는 매출과 수익이 오르지 않을 때 그 원인을 깊게 분석하지 않고 (인원과 비용 축소 등)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원인 분석과 반성은 반드시 해야하지만 그 문제의 원인이 과도한 인원과 낭비되는 비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무리 인원과 비용을 줄여도 그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매출과 수익이 나쁘다고 지속가능경영(ESG)을 접어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가능경영 역량을 키우는 시기로 삼으면 좋겠다. 그동안 해왔던 지속가능경영(ESG)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고 부족한 내부 역량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학습과 훈련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구글와 유튜브만 검색해도 돈 안들이고 지속가능경영(ESG)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사이트와 콘텐츠가 넘쳐난다. 찾기 귀찮으면 INSBee TV(클릭) 부터~ ^^
3. '하는 척' 하는 것을 버려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기업경영전략연구가인 게리 하멜(Gary Hamel) 런던비즈니스스쿨의 교수는 저서 Competing for the future(번역서 : 시대를 앞서는 미래경쟁전략)에서 기업경영전략의 변치않는 핵심은 자원과 역량의 선택과 집중이라고 했다. 그는 선택과 집중을 방해는 주요한 원인으로 '하는 척' 하는 것을 꼽았다.
기업이 진짜로 할 생각도 없고 진짜로 하지도 않으면서 '하는 척'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쓰는 자원을 '낭비자원' 이라고 부른다. 다른 기업이 하니까 단지 평판 관리를 위해 자원을 허비하는 것이 낭비자원의 대표적인 예이다.
지속가능경영(ESG)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경영(ESG)이 뭔지도 잘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제대로 할 생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속으로 ESG 소리가 이제 그만 나왔으면 하는 마음을 먹고 있는 기업이 억지로 '하는 척' 하는 것은 자원낭비일 뿐이다.
앞선 글 <지속가능경영을 잘하기 위해서 버려야 할 다섯 가지 / 클릭> 에서도 언급했지만 '하는 척' 하기 위해 하는 ESG 활동을 줄이고 본질에 집중한다면 많은 자원과 예산을 아낄 수 있다. 대표적으로 ESG 홍보행사와 광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디자인에 돈을 많이 쓰는 일 등이다.
<스웨덴 룬드 대학 지속가능경영 대학원 옥사나 교수님>
4. 데이터를 정리하고 개선하라.
2023년 10월 스웨덴 룬드대학의 지속가능경영대학원을 방문했을 때 옥사나 교수님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소비와 직결되어야 하며 소비자는 기업이 지속가능경영을 잘하는지 못하는지에 대해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고 평가한다고 했다.
매출과 수익이 줄어들어 ESG 팀에 예산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최우선, 최고의 일은 데이터를 정리하고 개선하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데이터의 신뢰도와 정확도는 말그대로 "별로"다. 게다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제작을 외부 컨설팅 업체에 맡기는 기업은 담당 실무자가 E.S.G 각 영역의 데이터가 어떻게 산출되는지 그 데이터가 정확한 데이터인지 아닌지, 데이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데이터를 가지고 기업 경영에 어떻게 반영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도 잘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이 ESG 의무공시를 꺼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ESG 공시에서 요구하고 있는 연결기준 데이터를 집계하지도 못하고 그 데이터의 검증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내년 ESG팀 예산이 대폭 줄고 조직 활동이 축소된다면 E.S.G 데이터 수집과 검증의 범위와 정확도, 신뢰도를 높이는 일을 하면 된다. 잘 알겠지만 ESG DB를 구축하고 개선하는 일은 돈 보다는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돈이 없다면 사람 손으로 직접 하면 된다.
5. 현장을 파악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해라.
정말로 ESG팀 예산도 줄고 할 일도 딱히 없다면 현장을 방문해 현황 파악을 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를 바란다. 특히, 그동안 전화와 메일로 ESG 데이터와 성과를 독촉했던 실무 부서와 현장의 사람들을 만나 인사도 하고 그들의 고충도 들어주자, 그리고 지속가능경영을 잘 실행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개선점을 요청하자... 바로 이것이 EU가 말하는 지속가능성 실사(due diligence)의 출발점이자 핵심이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당신이 가라는 것이다. 실무부서와 현장 사람들을 당신에게 오도록 하지 말고 당신이 실무부서와 현장에 직접 찾아가서 그곳의 분위기와 환경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경험과 대화, 실무부서와 현장에서 오는 아이디어와 개선점을 잘 정리해서 보고서로 만들고 그것을 윗 사람에게 잘 전달하자. 특히 경영진은 현장 상황과 반응을 매우 궁금해하고 중요하게 여긴다.
더 좋은 것은 당신이 부지런하다면 다른 기업의 ESG 담당자들을 만나보라는 것이다. 경쟁기업도 좋고 지속가능경영을 잘한다고 소문난 기업도 좋다. 그 회사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탐독한 후 미팅을 청하고 찾아가서 한 수 배우면 된다. 염탐하는 자세가 아니라 고민을 나누는 솔직한 자세가 중요하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이렇게 다른 기업의 실무자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 이직할때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실무 부서와 현장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지속가능경영 실행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업무와 회사생활에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누군가 MZ세대는 오프라인으로 관계 맺는 것을 힘들어 한다고 하던데, 일 잘하는 MZ, 남다른 차별성을 갖는 MZ가 되기 위해서는 현장 방문과 오프라인으로 관계 맺는 일을 기꺼이 할 줄 알아야 한다.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예산이 많지 않으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직접 작성할 수 있는 (그래서 당신의 업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가 생긴다. 기업 운영의 전체적인 비용이 삭감되면 '효율적 자원 운용'을 ESG 성과 목표로 삼고 비용 삭감이 에너지 효율 개선, 자원사용 효율 개선, 폐기물 감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당신의 업무를 그곳에 집중시키면 된다.
돈이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돈이 대신 해주었던 일을 당신 스스로 하게 되면 당신의 역량과 경쟁력이 일취월장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잘알고 있는 얘기지만, 사람의 본성은 위기와 위험을 마주했을때 들어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쓴 것처럼 "ESG 선도 기업"이 되고 싶다면 매출과 수익이 떨어졌을 때 지속가능경영을 어떻게 더 잘할지 고민해야 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
늦은 밤 학생과의 미팅은 끝났다.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 겨우 몸을 실었다. 최강야구는 재방송으로 봤다.
Balanced CSR & ESG 유승권
불황에도 ESG를 해야하나요?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대학원 저녁 강의를 마치고 짐 정리를 하는데 한 학생이 다가왔다. 잠깐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최강야구'의 마지막 부분이라도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말해보라고 했다.
"교수님, 회사에서 내년 사업계획을 짜고 있는데 우리 ESG팀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문제가 뭐냐면 ESG팀을 비롯해 본사 운영 부서 예산과 인력을 대폭 줄이겠다는 겁니다. 올해와 내년 회사 매출과 이익이 좋지 않다는 예상이 나온 것 같습니다. 담당 상무는 불황에 무슨 ESG를 하냐고.. 팀도 줄이고 예산도 팍 깍을 거라고 엄포를 놨습니다. 교수님, 불황에도 ESG를 해야하나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ESG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큰소리 치는 회사가 보고서가 나온지 100일도 채 안된 시점에서 매출과 수익이 안좋으니 ESG를 하지말라고 한 것이다. 뭐.. 그 속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불황에도 ESG를 해야하나요? 라기 보다는 불황에 ESG를 더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라고 하면 더 좋겠죠?"
"네, 제가 질문을 좀 부정적으로 한 것 같습니다. 요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고 있어서요."
안타깝지만 최강야구 보는 것을 포기했다. 학생과 나는 경영관 로비에 마주 앉았다.
지속가능경영(ESG)은 활동 이전에 경영 철학과 원칙
상담을 요청한 학생이 일하는 기업을 비롯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ESG)을 '기업 경영에 필수적이지는 않은데 돈은 많이 들어가는 일' 쯤으로 이해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맞다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이것은 대부분 오해다. 지속가능경영은 돈이 들어가는 활동이기 이전에 경영 철학과 원칙이다. 나는 학생에게 이렇게 첫 마디를 꺼냈다.
"매출과 수익이 안난다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사업을 하라고 하는 회사는 아니잖아요? 만일 진짜 법을 어기면서 사업을 하라고 하면 그 회사는 빨리 그만두는 것이 좋죠. 지속가능경영도 마찬가지예요. 돈 드는 일도 있지만 돈과 상관 없이 경영철학과 원칙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요."
"당연히 그 점도 잘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 규제를 지키거나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돈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잖습니까?"
"맞아요. 돈, 자원없이 그냥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죠. 자원이 부족할때는 더더욱 지속가능경영을 전략적으로 해야합니다. 전략이라는 것이 원래 제한적 자원을 가지고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니까요. 불황일때 기업이 어떤 전략을 써야하는지 수 많은 연구와 책이 있는데요. 그 수 많은 연구와 책들의 공통점은 생각보다 간단해요."
내가 학생에게 설명한 불황기의 기업전략, 특히 지속가능경영전략은 다음의 다섯가지이다.
1. 위축되거나 포기하지 마라!!
영국에서 오랜 불황이 지속될 때 기업 CEO가 임직원들에게 부정적인 메세지를 계속 주는 경우와 긍정적인 메세지를 계속 준 경우의 회복력에 대한 비교 연구를 했다. 부정적인 메세지를 계속 준 기업에서는 핵심 인력이 이탈하고 영업 활동의 횟수가 줄어 들었다. 반면 긍정적인 메세지를 준 기업은 핵심 인력들의 충성도가 올라가고 영업 활동의 횟수가 늘었다. 당연히 기업 매출과 수익의 회복도 긍정적인 메세지가 자주 전달된 기업이 빨랐다.
이 연구를 진행한 옥스퍼드 사이드 경영대학원의 교수 리차드 위팅턴(Richard Whittington)은 불황기를 겪거나 기업의 매출과 수익이 나빠졌을때 엄중함과 엄격함도 좋지만 임직원들이 위축되거나 주눅들게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물론, 경영성과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을 지게하고 방만한 경영과 태만한 근무 태도를 바로잡고 필요 없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타이트한 경영 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경영(ESG)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매출이 좋지 않다고 해서 ESG는 아예 말도 못꺼내게 하는 것은 지혜로운 전략이 아니다. 겁줘서 분위기 험악하게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하수(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다.
2. 반성과 학습의 기회로 활용하라.
조직 역량 강화를 위한 불멸의 명저 『학습하는 조직 / Fifth Discipline』 을 쓴 피터 센게(Peter Senge) 교수는 불황일 때야 말로 조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그는 보통 기업이 잘되서 매출과 수익이 쭉쭉 올라가면 기업은 조직과 임직원의 역량을 강화할 생각보다는 성공의 열매를 즐기는 파티를 연다고 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잘 나갈때는 즐길 생각만하지 훈련하거나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피터 센게 교수는 매출과 수익이 오르지 않을 때 그 원인을 깊게 분석하지 않고 (인원과 비용 축소 등)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원인 분석과 반성은 반드시 해야하지만 그 문제의 원인이 과도한 인원과 낭비되는 비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무리 인원과 비용을 줄여도 그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매출과 수익이 나쁘다고 지속가능경영(ESG)을 접어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가능경영 역량을 키우는 시기로 삼으면 좋겠다. 그동안 해왔던 지속가능경영(ESG)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고 부족한 내부 역량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학습과 훈련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구글와 유튜브만 검색해도 돈 안들이고 지속가능경영(ESG)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사이트와 콘텐츠가 넘쳐난다. 찾기 귀찮으면 INSBee TV(클릭) 부터~ ^^
3. '하는 척' 하는 것을 버려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기업경영전략연구가인 게리 하멜(Gary Hamel) 런던비즈니스스쿨의 교수는 저서 Competing for the future(번역서 : 시대를 앞서는 미래경쟁전략)에서 기업경영전략의 변치않는 핵심은 자원과 역량의 선택과 집중이라고 했다. 그는 선택과 집중을 방해는 주요한 원인으로 '하는 척' 하는 것을 꼽았다.
기업이 진짜로 할 생각도 없고 진짜로 하지도 않으면서 '하는 척'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쓰는 자원을 '낭비자원' 이라고 부른다. 다른 기업이 하니까 단지 평판 관리를 위해 자원을 허비하는 것이 낭비자원의 대표적인 예이다.
지속가능경영(ESG)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경영(ESG)이 뭔지도 잘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제대로 할 생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속으로 ESG 소리가 이제 그만 나왔으면 하는 마음을 먹고 있는 기업이 억지로 '하는 척' 하는 것은 자원낭비일 뿐이다.
앞선 글 <지속가능경영을 잘하기 위해서 버려야 할 다섯 가지 / 클릭> 에서도 언급했지만 '하는 척' 하기 위해 하는 ESG 활동을 줄이고 본질에 집중한다면 많은 자원과 예산을 아낄 수 있다. 대표적으로 ESG 홍보행사와 광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디자인에 돈을 많이 쓰는 일 등이다.
<스웨덴 룬드 대학 지속가능경영 대학원 옥사나 교수님>
4. 데이터를 정리하고 개선하라.
2023년 10월 스웨덴 룬드대학의 지속가능경영대학원을 방문했을 때 옥사나 교수님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소비와 직결되어야 하며 소비자는 기업이 지속가능경영을 잘하는지 못하는지에 대해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고 평가한다고 했다.
매출과 수익이 줄어들어 ESG 팀에 예산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최우선, 최고의 일은 데이터를 정리하고 개선하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데이터의 신뢰도와 정확도는 말그대로 "별로"다. 게다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제작을 외부 컨설팅 업체에 맡기는 기업은 담당 실무자가 E.S.G 각 영역의 데이터가 어떻게 산출되는지 그 데이터가 정확한 데이터인지 아닌지, 데이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데이터를 가지고 기업 경영에 어떻게 반영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도 잘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이 ESG 의무공시를 꺼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ESG 공시에서 요구하고 있는 연결기준 데이터를 집계하지도 못하고 그 데이터의 검증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내년 ESG팀 예산이 대폭 줄고 조직 활동이 축소된다면 E.S.G 데이터 수집과 검증의 범위와 정확도, 신뢰도를 높이는 일을 하면 된다. 잘 알겠지만 ESG DB를 구축하고 개선하는 일은 돈 보다는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돈이 없다면 사람 손으로 직접 하면 된다.
5. 현장을 파악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해라.
정말로 ESG팀 예산도 줄고 할 일도 딱히 없다면 현장을 방문해 현황 파악을 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를 바란다. 특히, 그동안 전화와 메일로 ESG 데이터와 성과를 독촉했던 실무 부서와 현장의 사람들을 만나 인사도 하고 그들의 고충도 들어주자, 그리고 지속가능경영을 잘 실행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개선점을 요청하자... 바로 이것이 EU가 말하는 지속가능성 실사(due diligence)의 출발점이자 핵심이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당신이 가라는 것이다. 실무부서와 현장 사람들을 당신에게 오도록 하지 말고 당신이 실무부서와 현장에 직접 찾아가서 그곳의 분위기와 환경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경험과 대화, 실무부서와 현장에서 오는 아이디어와 개선점을 잘 정리해서 보고서로 만들고 그것을 윗 사람에게 잘 전달하자. 특히 경영진은 현장 상황과 반응을 매우 궁금해하고 중요하게 여긴다.
더 좋은 것은 당신이 부지런하다면 다른 기업의 ESG 담당자들을 만나보라는 것이다. 경쟁기업도 좋고 지속가능경영을 잘한다고 소문난 기업도 좋다. 그 회사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탐독한 후 미팅을 청하고 찾아가서 한 수 배우면 된다. 염탐하는 자세가 아니라 고민을 나누는 솔직한 자세가 중요하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이렇게 다른 기업의 실무자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 이직할때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실무 부서와 현장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지속가능경영 실행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업무와 회사생활에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누군가 MZ세대는 오프라인으로 관계 맺는 것을 힘들어 한다고 하던데, 일 잘하는 MZ, 남다른 차별성을 갖는 MZ가 되기 위해서는 현장 방문과 오프라인으로 관계 맺는 일을 기꺼이 할 줄 알아야 한다.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예산이 많지 않으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직접 작성할 수 있는 (그래서 당신의 업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가 생긴다. 기업 운영의 전체적인 비용이 삭감되면 '효율적 자원 운용'을 ESG 성과 목표로 삼고 비용 삭감이 에너지 효율 개선, 자원사용 효율 개선, 폐기물 감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당신의 업무를 그곳에 집중시키면 된다.
돈이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돈이 대신 해주었던 일을 당신 스스로 하게 되면 당신의 역량과 경쟁력이 일취월장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잘알고 있는 얘기지만, 사람의 본성은 위기와 위험을 마주했을때 들어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쓴 것처럼 "ESG 선도 기업"이 되고 싶다면 매출과 수익이 떨어졌을 때 지속가능경영을 어떻게 더 잘할지 고민해야 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
늦은 밤 학생과의 미팅은 끝났다.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 겨우 몸을 실었다. 최강야구는 재방송으로 봤다.
Balanced CSR & ESG 유승권